요세프 쿠델카, 1968년 8월 프라하. by 라키난




 체코는 정말, 희극적일 정도로, 지배와 저항이 반복된 곳이다. 체코에 관해 글을 쓰느라[i] 체코 문화에 관한 책은 죄다 찾아 읽었다. 덕분에 어딘지도 몰랐던 나라의 이야기에 한동안 푹 빠져 지냈다. 예를 들면, 7-80년대 공산주의 정권의 감시 하에 몰래 책을 찍어내던 일을 두고 “굉장히 스릴 있는 경험이었다”[ii]며 웃음짓던 체코인을 만났다. 말처럼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말에 배인 힘이 내가 체코를 보는 시선의 기초가 되었다. 체코는 그런 곳이다. 유연하면서 강하고, 철학적이고 풍자적이지만 유쾌하며, 사람들이 통 크고 친절하고 맥주가 맛있는 나라다[iii]. 밋밋해 보였던 이 사진을 고른 이유는, 내가 이젠 체코라는 울림에 이유없는 친근함과 애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진을 딱보면, 바로 와 닿는 것 없이 평범하다. 오히려 못 찍은사진 같다. 아래쪽에 툭 튀어나온 팔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팔이 없으면 밋밋해도 무난한 사진이 될 텐데 이 때문에 깔끔하지 않은 구도가 되었다. 사람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적막하다. 그 사이를 팔 하나가 가로지르는 거다. 쑥 나오는 게 횡단보도를 들이박는 것 같기도 하다. 시계는 6시, 잔치는 끝났다, 집에 갈 시간이다. 제목을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칠 뻔 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 1968년 8월. 프라하의 봄이 짧은 꿈으로 끝났을 때다.

 체코의 문화는 외부 세력의 지배에 대한 반발에 뿌리를 둔다.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에 흡수됐던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한 나라로 독립한 게 1918년이다. 독립 딱 20년후, 체코는 나치에 희생양으로 던져진다. 독일이 2차대전에 패배한 45년, 소련군이 프라하에 들어선다. 48년, 공산정권의 감시와 검열이 이어진다. 체코인들은 이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저항운동을 펼쳤다. 프라하의 봄은 익히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공산주의 내에서의 민주화 개혁운동이었지만, 체코의 주체성과 자치권을 주장하며 자유에의 갈망을 폭발시켰다. 언론에서는 공공연히 민주화를 논하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이 열기는 소련이 보낸 바르샤바 조약군이 프라하를 점령하면서 강제 종료된다.

 탱크가 프라하에 줄지어 들어왔을 때, 프라하 시민들의 얼굴에 어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경악, 탄식, 절망? 혹은 그들이라면 담담히 다음 저항을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사진 속의 바츨라프 광장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텅 빈 광장에는 낯선 곳에 혼자 내동댕이쳐졌을 때와 같은 적막한 불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정말 아무도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최소한 한 명은, 카메라를 든 사진가 하나는 이를 내려다보며 서있는 거다. 그는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한 손으로는 주먹을 쥐고 있다.

 소실점의 방송국 본부는 멀고 흐릿하지만, 팔뚝은 가깝고 또렷하다. 사진가는 강한 대조를 통해 팔에 분명한 존재감을 부여했다. 주먹을 꽉 쥔 손이 불끈, 항의하며 외치는 것 같다. 여기 이것 좀 보라고. 이제 사진은 그의 팔에서부터 시작한다. 목표는 저 앞이다. 그러나 그는 팔을 휘두르지 않는다. 수평으로 뻗은 팔은 시계를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굳건하게 자리잡은 팔뚝이 길고 음울하게 이어지는 건물의 수직선과 직교한다. 팔이 있기 때문에 시선은 흩어지지 않는다. 그의 팔은 우리 바로 앞, 바로 거기에 존재하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넓고 막막해지는 회색의 공간을 뚫고 들어와 우리를 붙들어 맬 수 있다.

 사진을 찍은 요세프 쿠델카는 이후 망명자가 되어 무국적자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젊을 때부터 일생 집시를 찍었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으며, 광고 사진이나 보도 사진은 찍지 않았다. 프라하의 사진이 가장 ‘정치적’인 사진이었다. 체코인들은 그를 자랑스러워 했으리라 생각한다. 체코는89년[iv], 혁명으로 기어코 자유를 얻는다. 연일 대중시위가 있었고, 프라하 전체가 총파업을 했다. 그들의 혁명은 폭력 없는 부드러운 혁명이었기에 벨벳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난히 조용한 이 사진은, 번번이 수난을 겪으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은, 체코를 닮았다.

---------------------------------------------

[i] <체코 SF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http://cafe.naver.com/nfantastiqu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921&
[ii] <야로슬라프 올샤 Jr. 주한 체코 대사와의 만남>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event&no=222
[iii] 맥주 공장이 있기로 유명한 체코 필젠의 맥주 ‘감부리누스’는 현재 한국에 정식 수입되고 있다. 혹은 전통 체코식 하우스 맥주를파는 ‘캐슬 프라하’에 가면 체코의 맥주를 맛볼 수 있으며, 캐슬 프라하 홍대점에는 체코 대사와의 협력으로 정식 체코 문화원이 꾸며져 있다.
[iv]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은 89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공산권에서 독립하여공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선언한 것은 92년이며, 이후 93년 상호 합의 하에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다.



수업 중간고사 대체 과제. 쓰는 데 한 시간, 분량에 맞춰서 줄이느라 한 시간 걸렸었다.


덧글

  • 공연기획자 2015/05/01 10:54 # 삭제 답글

    잘 보고 갑니다!
댓글 입력 영역



라운드 시계